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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0일 금요일

감정은 물질이기에

감정은 물질이기에 혼합된 비율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하지만 언어는 너무 무딘 칼. 이름 붙여지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은 인식하기도 어렵지만 알아 차렸다 한들 자아의 주인 조차 그걸 명확히 이해 할 수 없다. 이름 붙여지지도 정의되지도 않은 그 느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언어로 학습하고 소통하는 행위는 어떻게 생각해보면 명확한 한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이유로 자아의 주인이라고 일컫는 '나' 조차 나와 완전한 소통과 공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타인과의 완전한 소통은 물론 불가능하다. ‘나’도 모르겠는데 ‘나’에 대해서 ‘너’를 납득시킬 수 있을리가.(타인과의 소통은 언어라는 유일한 매개체의 한계성에 영향을 크게 받는데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 느끼는 것 조차 완전하게 전달 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주장에는 내가 모를 논리적 비약, 과학적 무지가 숨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생각을 정리하기 전부터 나도 내 기분을 알 수 없는 상태가 너무 오래 되었고 가끔은 죽을 것 처럼 괴롭다. 오늘은 승현이가 그랬다. 자기는 이제 친구가 우울하거나 너무 힘들어 보이면 그 근원에 대해서 묻거나 조언하는게 매우 조심스럽다고.. 이유는 친구의 감정의 깊이를 알 수없기 때문이란다.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는 난 그래도 지금은 니가 뭐든 물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만 그냥 나중에 그 말을 곱씹어 보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5 tonight, tongiht: 8월 2018 감정은 물질이기에 혼합된 비율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하지만 언어는 너무 무딘 칼. 이름 붙여지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은 인식하기도 어렵지만 알아 차렸다 한들 자아의 주인 조차 그걸 명확히 이해 할 수 없다. 이름 붙여지지도 정의되지도 않은 그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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