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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3일 목요일

colorless tsukuru



‘색채가 없는’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느낌이 있다. 그냥 편하게 그걸 색채가 없다고 하자. 색채가 없는 나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주변의 색채가 강렬한 원색으로 비춰져서 큰 대비를 느꼈달까. 그렇다면 나는 무채의 색을 가졌다. 무언가 비어있는, 당연하게 있어야 할 지점들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공허한 나는 그 비어있는 공간으로 타인들을 포용한다. 색과 색이 없음의 만남은 충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의 공간에 잠시 와서 물을 털고 색을, 흔적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하루키 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쓰쿠루 속에 무엇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을 찾지 못해, 또는 찾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체념하고 떠나버리는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내면에 무슨 색을 남길 수 있었을까. 물론 나는 이와 반대로, 내가 관계를 포기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빨간 실을 그 핏줄을 단칼에 짤라 버린건 다름아닌 나였다. 그건 정말로 칼에 베인 것 처럼 그 순간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견딜수 없는 고통이 된다.

나의 인간관계의 역학은 도의적으로 잘못 되었다. 그래서 내 쪽에서 남겨진 핏줄의 잔해는 정말로 썩은내를 내며 부패하고 있다. 또한 나의 무채색은 이미 수 많은 색에 섞여 혼탁해져버렸다. 그 깊은 바다 속에서 나는 어디 있을까 부재중인 나의 색깔은 어디 있을까. 나는 그저 밑바닥을 걸어 다니고 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길을 잃은 듯한 아마도 비슷한 모습의 동료를 만난 것 같다. 기쁜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역 위에 서있다. 쓰쿠루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갈 곳이 있는 사람들, 그 분주한 사정들을 하나 하나 살펴가며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그건 수직선이 아닌 수평선이기에 아름답다. 그 교차하는 색의 향연 위에 우리도 탑승한다면 구원 받을 수 있겠지. 아마도 우리가 탈 자리 정도는 비어 있을 거다. 만약 승무원이 표를 확인하러 온다면 내가 시간을 끌어볼게. 내 걱정은 조금만 해줘.
5 tonight, tongiht: colorless tsukuru ‘색채가 없는’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느낌이 있다. 그냥 편하게 그걸 색채가 없다고 하자. 색채가 없는 나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주변의 색채가 강렬한 원색으로 비춰져서 큰 대비를 느꼈달까. 그렇다면 나는 무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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