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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일 화요일

삶의 시

catherine hyland moon / studio art therapy

우리는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삶에 대한 시가 된다. 무수한 것들이 드러날듯 말듯 나름대로의 형태로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은 언어가 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손실되고 생략된다. 그래서 침묵은 수 많은 것들이 표현되는 시간이며, 자아가 세계와 깊은 방식으로 소통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꽤나 명료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은밀한 표식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영원히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시적인 표현을 보는 건 명확한 사실만을 알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타인과 함께 어두운 그곳에서 더듬더듬 길을 찾는 동반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며 그 사람을 온전히 경청하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하는 건 나라는 존재의 민감한 공감일 것이다.

이렇게 예술적인 관점으로 타인을 보는 것은 관찰자의 창작활동 즉 소설쓰기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닌 관찰자의 자아와 대상의 자아 사이의 융합과 공존이며 무한한 진실의 찰나 가운데서 그 순간의 진실을 포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상에 대한 표현은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많은 것들에 대한 진실이다. 그것은 객관과 차이가 있으며 대상이 은연히 드러내는 것과 관찰자가 지각하는 것 사이의 경계에서 발견 할 수 있다.

또한 비언어적인 표현이 언어적 표현의 맥락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게 되는 건, 이와 같은 관찰이 타인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돕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상적 태도만으로는 우리가 예술작품을 볼 때 가지는 미적인 거리감을 해소할 수 없는 것 같다.

이걸 쓰고 읽고 있으면 정성일 평론가가 들뢰즈를 인용한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가 떠오른다. 물론 맥락과 뜻은 다른 것 같지만.. 문장이 문학적이라서 여기에 쓰이면 또 다르겠지. 그리고 레오까락스가 언급한 무성영화가 가지는 신의 손길도 언어를 배제했을 때 집중할 수 있는 배우들의 삶의 시가 아닐까.


5 tonight, tongiht: 삶의 시 catherine hyland moon / studio art therapy 우리는 아주 개인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삶에 대한 시가 된다. 무수한 것들이 드러날듯 말듯 나름대로의 형태로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은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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